[시승기] 길을 잃어버려도 상관없다, 지프 랭글러 오버랜드
길을 잃었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니. 글 주영삼 / 사진 Kyotography_ 일곱 살 무렵 궁금했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망울로 원초적인 질문을 하는 아들에게 엄
길을 잃었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니.
글 주영삼 / 사진 Kyotography_
일곱 살 무렵 궁금했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망울로 원초적인 질문을 하는 아들에게 엄마 그리고 아부지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혼란스러웠다. 어느 다리 밑이란 말인가. 양화대교? 마포대교?
우리는 이렇게 모두 다리 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걸음마를 뗀 순간부터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태극기를 꽂기 희망하는 자는 꿈에서조차 눈으로 하얗게 물든 산길을 오른다.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인 운동선수는 돌고 돌아도 끝이 없는 트랙을 매일같이 땀으로 흠뻑 적신다. 공무원을 꿈꾸는 공시생은 합격할 때까지 노량진 학원가로 나가야만 한다.
이렇듯 목표를 이루려면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 길이 맞나? 혹은 다른 길은 없나? 확신이 사라지는 순간 주저앉는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모험이라는 본능을 깨우는 것이다. 누군가 닦아 놓은 길이 아닌 나만의 길. 처음으로 발자국을 새길 수 있는 로드 트립.
쳇바퀴 돌아가듯 뻔한 일상 말고 ‘펀’한 일상이 필요하다. 매일 걷는 길 항상 달리는 도로가 아닌 흙냄새, 풀냄새가 진동하는 ‘야생’ 말이다. 매일같이 지겹게 하는 면도는 생략하고 모자 하나 챙겨서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선다. 지프 랭글러 오버랜드 파워탑. 이 녀석이 오늘 모험의 파트너다. 못 가는 길이 없는 진짜 SUV라고 하던데… 과연 정말일까.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엔진 질감은 지프 브랜드 특유의 ‘걸걸’되는 느낌이다. 정제되지 않은 그리고 구태여 숨기지 않는 진동과 소음이 터프하다. 오늘의 목적지는 오프로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경반분교다. 세미 오프로드와 차박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지겨운 일상을 피해 모험을 떠나기 알맞은 곳이다.
고속도로에 올라 본격적으로 녀석의 성격을 파악해본다. 랭글러 오버랜드의 파워트레인은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조화를 이루어 최고출력 272마력, 최대토크 40.8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액셀을 지그시 밟으면 원하는 속도에 금방 도달할 수 있다. 페달감은 부드러운 편으로 운전하기 편해 발목에 부담이 없고, 터보렉 또한 느끼기 힘들다. 다만 공차중량이 2톤이 넘기 때문에 200마력 후반대의 출력은 체감되지 않는다.
브레이크의 경우 페달의 답력이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하게 이어져 운전하기 편하다. 다만 강한 제동을 걸 때 오프로드 차량 특유의 서스펜션 세팅에서 오는 노즈 다운이 발생한다. 또한 핸들 조향 시 롤링도 꽤 있는 편이다. 물론 이러한 세팅은 오프로드 주행 시 장점으로 바뀌고, 평상시 운전에서도 부드러운 승차감을 제공한다.
소음에 대해 말하자면 있는 편이다. 지프 특유의 걸걸 되는 엔진음은 터프하다고 치더라도 소음은 염두에 두지 않은 타이어 그리고 정말 시원하게 열리는 전동식 소프트탑으로 인해 노면 소음과 풍절음은 감수해야 한다. 타이어는 이 차의 성격이기 때문에 감안하더라도 풍절음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파워탑 모델이 아닌 일반 모델을 구입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반자율주행의 경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사용방법은 스티어링 휠 오른쪽에 위치한 조그 스위치로 편하고 쉽게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앞차와의 간격을 잘 유지하며 가감속 시에도 불편하지 않은 승차감을 제공한다.
높이 평가하고 싶은 점은 이 기능이 어설픈 차량의 경우 초보운전자가 운행하는 차를 탄 것 같은 울렁 거리는 느낌을 주는데, 오버랜드는 그러한 면에서 전혀 흠잡을 게 없다. 물론 차로를 유지해 주는 기능도 추가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지프라는 브랜드의 성격을 고려해 볼 때, ACC 기능만으로 충분하다.
지금부터는 녀석의 거친 매력을 느껴볼 시간이다. 이곳에 대해 혹자는 “세단으로도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4륜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말하지만 필자가 경험해본 결과 세단이라면 차량의 하부가 작살날 것이고, 4륜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려야 하는 난처한 상황을 겪을지도 모른다.
본격적으로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위해 랭글러 오버랜드의 4륜 구동 시스템을 조작했다. 오버랜드에 적용된 4륜 구동 시스템은 풀타임 구동 방식이다. 즉 차량 스스로 구동 배분을 하기 때문에 일상에서는 굳이 조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 오너가 노면의 상태를 파악해 적절한 구동방식으로 설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구동 모드는 2륜, 4륜 오토, 4륜 하이, 4륜 로우까지 총 네 가지다. 기어를 넣는 방법은 다소 까다로운데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으로는 시속 20km 이하의 속도로 달리다가 기어 단수를 D에서 N으로 바꾸고 자연스럽게 4륜 기어봉을 4L 위치로 옮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어렵다면 차량을 정지시킨 후 기어는 N으로 넣어두고 4륜 기어봉을 4L 위치로 넣는 방법도 있다. 기어가 변경되지 않는다면 차량을 아주 조금 전진 시키고 다시 넣는 방식으로 반복한다. 단 강제로 넣을 시 고장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해서 변속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와 같은 구시대적인 지프의 4륜 조작 방식이 낯설고 불편할 수 있으나 하다 보면 기어가 들어가는 순간 전해지는 기계적인 손맛에 빠져들고 만다.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4륜 로우 기어가 들어갔다면 이제 정제되지 않은 길을 맛보기만 하면 된다. 손은 힘을 빼고 스티어링 휠에 살포시 얹는다. 액셀은 밟아도 그만이고 밟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부족한 당신의 오프로드 스킬은 녀석이 숨겨줄 테니.
거침없이 오른다. 노즈 다운을 유발했던 부드러운 서스펜션은 노면의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여주고, 공도에서 소음을 유발했던 큰 타이어는 거친 자갈밭을 우직하게 걷는다. 어디 이뿐이랴 도심형 SUV에서 보기 힘든 높은 지상고는 도강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게 만들고, 앞뒤로 짧은 오버행은 진입각과 탈출각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낸다.
4륜 로우 기어를 넣은 것이 민망할 정도로 녀석은 자갈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길은 물론 도강조차 너무나 싱겁게 해냈다. 오히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 필자였을 뿐. 1.8km 정도의 오프로드 길을 지나 캠핑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녀석을 잠시 감상해보았다.
누가 봐도 랭글러다. 아니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지프라는 것은 알아챌 수 있다. 브랜드의 시그니처 모델이기도 하고, 세대를 거듭해도 마니아가 아닌 이상 어느 부분이 변했는지 알아채기 힘든 모델이다. 좋은 말로 하면 ‘헤리티지’ 그 반대는 ‘사골’.
다만 오버랜드는 사하라의 후속 모델이기 때문에 루비콘과 다른 결을 보여준다. 우선 펜더가 바디와 같은 색상으로 칠해져 있다. 또한 랭글러와 휠 디자인이 다르며, 안개등 형상도 좀 더 부드럽다. 루비콘이 빨간 맛이라면, 오버랜드는 덜 빨간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프로드 성능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측면에서 살펴보면 전형적인 찝차의 형상이다. 펜더는 언제든지 ATM 타이어를 품을 수 있도록 크고 웅장하며, 앞뒤로 극단적으로 짧은 오버행은 랭글러의 핏줄임을 보여준다. 헤드라이트가 둥근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이 사각형으로 디자인돼, 클래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뒤에서 바라보아도 마찬가지다. 리어 램프도 사각형, 트렁크 라인도 사각형.
실내로 들어가 보면 심플하고 투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투박함이 기분 나쁘지 않은 건 블랙과 실버의 오묘한 조화 때문이다. 또한 시트에는 오버랜드 모델임을 보여주는 자수가 박혀있고, 기어봉에는 귀여운 지프 로고가 그려져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시트 등받이 각도를 조절하는 방법이 끈으로 된 손잡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랭글러 오버랜드에는 이 녀석만의 재미가 군데군데 숨어있다.
2열로 자리를 옮겨도 불만은 없다. 레그룸과 헤드룸은 넉넉하고 착석감도 나쁘지 않다. 다만 2열 폴딩 시 완벽히 평탄화가 되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차박을 원한다면 애프터마켓 제품을 이용해 해결해야 한다. 물론 이 부분이 단점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 건 아까 언급했던 어마 무시한 파워탑 덕분이다.
녀석과 1박 2일 동안 거침없이 달렸다. 잘 닦인 반듯한 도로를 달릴 때면 우리가 걸어가는 길도 이렇게 반듯했으면 싶었고, 이리저리 요동치는 오프로드 길을 질주할 때에는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 것도 재미있구나 싶었다. 누구나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 때로는 제풀에 지쳐 쓰러질 것이며, 이게 맞는 방향인지 헷갈릴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기억하자. 길을 잃을 수는 있어도 못 가는 길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