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트랙만 1700개, 나홍진의 집념이 만든 SF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15일 개봉한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이 출연하며 압도적 스케일의 SF 크리처물을 선보인다.
한 장면의 사운드 트랙 1700개, 나홍진의 완벽주의가 빚은 세계
나홍진 감독은 영화 '호프'의 완성도를 위해 개봉 직전까지 믹싱실을 지켰다. 한 장면을 채우는 사운드 트랙만 1700개에 달할 정도로 소리에 집착했다. 나 감독은 인터뷰에서 "믹싱실에서도 이제 그만 오라고 하더라"며 고충을 전하면서도, 크리처의 손가락에 묻은 피 한 방울까지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면모를 보였다.
이번 작품은 한국 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제작 단계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나 감독은 기획 단계의 스트레스를 언급하며 "사람에게 탈을 씌워서 했으면 됐을 텐데 왜 이 짓을 했을까 싶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정교한 크리처 구현을 위해 쏟은 물리적·심리적 에너지는 상당했다.
나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더 상위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곡성'이 초자연적 현상을 다뤘다면, '호프'는 우주와 외계인이라는 소재로 확장됐다. 그는 "SF라고 말하기에도 곤란하고, 걔네들이 외계인이라고 하기도 뭐한 그런 비주얼이다. 크리처물로 보는 게 맞다"며 장르적 경계를 정의했다.
황정민의 생활 연기와 조인성·정호연의 피지컬 액션
배우들의 연기가 거대한 SF 세계관을 지탱한다. 나 감독은 황정민을 향해 "믿을 수밖에 없는 배우"라며, 그의 퍼포먼스 덕분에 거대한 도박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황정민이 맡은 '범석'은 비무장지대 호포항 출장소장으로,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이끄는 화자 역할을 한다. 그는 특유의 생활 연기와 말투로 인물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중반부부터는 조인성의 존재감이 극을 압도한다. 마을 청년 '성기'를 연기한 조인성은 거친 인상과 달리 강한 생존 의지를 가진 인물이다. 특히 장총을 사용하는 액션과 말을 타고 평원을 질주하는 승마신은 그의 피지컬을 여실히 보여준다. 황혼빛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이 장면은 서부극을 연상시킨다.
정호연은 극 중 유일한 여성 인물인 '성애' 역을 맡았다. 그녀는 능숙한 장총 액션과 카체이싱을 소화하며 전면에 나선다. 조연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이상희는 현실적인 입담의 '낙연'을, 음문석은 의뭉스러운 매력의 '목수'를 연기했다.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전의 총기 액션은 극의 재미를 더한다.
호포항의 폐쇄적 공간에서 루마니아의 원시림까지
영화의 무대는 공간의 유기적인 연결로 입체감을 얻는다. 초반 배경인 호포항은 좁은 골목과 주택, 항구와 산길이 하나의 생태계처럼 얽혀 있다. 범석의 시선을 따라 마을을 누비는 과정에서 좁은 길을 오가는 카체이싱과 추격전이 펼쳐진다.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듯한 구현은 나 감독이 공들인 결과물이다.
중반부 이후 무대는 루마니아의 광활한 원시림으로 옮겨진다. 울창한 숲은 미지의 공간으로 다가오며, 인간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력한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영화는 세 개의 파트로 변주되는 2시간 36분의 서사를 갖췄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기괴한 난장판 속에서 대담하게 질주하는, 영화 전체가 거대한 크레센도"라고 평했다.
외계인의 외형이 인간 배우의 얼굴과 겹쳐 보이는 점과 후반부 외계인에게 부여된 인간적 서사가 공포의 밀도를 흐릴 수 있다는 점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압도적인 스케일과 인간의 생존 본능을 다룬 지점은 이 영화가 극장에서 경험해야 할 이유를 만든다.
칸의 영광과 '핑계고'에서 보여준 배우들의 케미스트리
영화 '호프'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배우들은 유튜브 채널 '뜬뜬'의 '핑계고'에 출연해 칸 영화제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정호연은 칸 디너 당시 황정민이 직접 곱슬머리를 손질하고 나타났던 모습을 회상하며 "영화 속 캐릭터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고 전했다.
황정민은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모습 사이의 간극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그는 특유의 붉은 얼굴 톤에 대해 "거의 특수분장 수준으로 메이크업을 한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조인성은 해외 촬영 시 영어 담당으로 추천받았으나 "외국 나가면 과묵하고 화가 나 있는 스타일"이라며 거절하는 입담을 보였다.
배우들은 촬영장에서의 팀워크를 과시하면서도 일상에서는 현실 남매 같은 모습을 보였다. 나홍진 감독이 설계한 거대한 세계관과 배우들의 에너지가 맞물린 '호프'는 오는 15일 관객들을 찾아간다.
극장 개봉 및 비대면 시네마톡 일정
영화 '호프'는 오는 15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CGV는 오는 11일과 12일 양일간 '이동진의 언택트톡' 29번째 작품으로 '호프'를 선정했다. 이번 상영에서는 영화 종료 후 약 105분간 나홍진 감독과 이동진 평론가의 대담 영상이 단독 공개된다.
나홍진 감독의 장르적 고민과 글로벌 시장
나홍진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장르물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밝혔다. 그는 “이제는 영화가 순도 높은 장르물로 축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내 시장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밖의 시장까지 새롭게 만들어내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품의 성격에 대해 그는 “글로벌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다는 장르 작품이라는 말이 맞아요. 일반적인 한국영화 구조를 갖춘 영화를 기대하는 대중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어요. 그 부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떨리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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