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후동행카드 종료 코앞… 정책의 미로에 갇힌 시민들, 잃어버린 '동행'의 의미
이름은 정책의 존재 이유와 그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여 탄소 배출을 줄이고, 고물가 시대에 서민의 무게를 덜어주겠다던
이름은 정책의 존재 이유와 그 철학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여 탄소 배출을 줄이고, 고물가 시대에 서민의 무게를 덜어주겠다던 포부.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는 그 이름만큼이나 선량한 의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불과 2년6개월 만에 이 카드는 시민들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책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강행된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와 후속 조치의 지난한 지연은, 애초에 이 정책이 진정 누구를 위해, 누구와 ‘동행’하고자 했는지 뼈아픈 의문을 던진다.
◆ 명분만 앞선 일방통행, 흔들리는 시민의 일상
가장 개탄스러운 대목은 정책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행정 편의주의’와 소통의 부재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시민의 혼란을 줄이고 체계를 일원화하겠다며 기존 카드를 종료하고 ‘모두의 카드(K-패스)’ 기반의 ‘기후동행카드 플러스’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일원화’의 이면에는 엇박자 행정이 초래한 무책임한 촌극이 자리하고 있다. 실물 카드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던 시민들은 애써 구한 카드를 폐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50만 명에 달하는 후불 결제 이용자들은 번거로운 해지 및 재발급 절차를 강요받고 있다.
◆ '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증발해 버린 맞춤형 혜택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혜택의 실질적인 공백이다. 서울시가 공언한 ‘기후동행카드 플러스’는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연말이나 내년으로 표류 중이다. 당장 9월부터 ‘모두의 카드’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갈아타야 하는 시민들은 황당할 따름이다. 청년 할인의 연령 상한선은 만 39세에서 34세로 축소되었고, 청소년들은 아예 혜택의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연계 할인마저 기약이 없다. 부처 간 칸막이와 주도권 다툼 속에서 정작 가장 두텁게 보호받아야 할 청년, 청소년, 서민의 혜택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는 셈이다.
◆ 실험실의 쥐로 전락한 시민들, 그 무책임의 끝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몇 달 뒤 또 바뀔 텐데 왜 지금 바꾸라는 거냐”, “이럴 거면 애초에 왜 없애는 거냐”라는 성토가 연일 쏟아진다. 통합 서비스가 언제 시행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시민들은 짧은 기간 내에 카드를 두세 번씩 갈아타야 하는 극심한 피로감과 혼란을 마주하고 있다. 훌륭한 정책은 시민의 일상에 매끄럽게 스며들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시민을 설익은 정책의 ‘실험실 쥐’로 취급하는 행정의 오만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전 협의도 없이 ‘통합’부터 발표하여 국토부의 반발을 산 서울시의 독단이나, 시스템 연계를 이유로 시민들의 불편을 수개월째 방치하는 정부나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시스템의 통합이나 행정적 효율성보다 언제나 우선해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는 시민의 편의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다.
◆ 잃어버린 '동행'의 가치를 되찾으려면
정부와 지자체는 당장 출발점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관계 기관과 긴밀히 협의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을 식탁 위에 올려 혼란을 자초하는 일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과 30대 후반 청년을 위한 구제책을 즉각 마련하고, 투명하고 매끄러운 조율을 거쳐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온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기후 위기 대응과 서민 경제 안정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은 결국 제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질 때 완성된다. 시민들을 정책의 미로 속에 덩그러니 방치해 둔 채 각자의 명분만 내세우는 기관들에게는 ‘기후’를 논할 자격도, ‘동행’을 말할 가치도 없다. 정책 입안자들의 안락한 책상 위가 아니라, 시민들이 매일 땀 흘리며 오르내리는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에서 정책의 진정한 가치가 증명되기를 엄중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