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민국 해군의 시작, 백두산함을 기억하다 (5)
<5> PG-313 충무공함 해방병단(海防兵團) 단원들의 사기 진작과 정서를 함양시킬 방법을 궁리하던 손원일은 아내(홍은혜)의 의견을 받아들여
<5> PG-313 충무공함
해방병단(海防兵團) 단원들의 사기 진작과 정서를 함양시킬 방법을 궁리하던 손원일은 아내(홍은혜)의 의견을 받아들여 4월 2일, 김석창 병조장을 대장으로 하는 해방병단 음악대를 창설한다.
사실 홍은혜는 이화여전(現 이화여대) 음악과를 졸업한 인재로 악기 연주는 물론 작곡에도 매우 능한 여인이다. 홍은혜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대원들에게 악보 읽는 법, 악기 연주법 등을 체계적으로 지도한다. 며칠 뒤인 4월 15일 인천에 기지를 세우고 났을 때, 최용남이 찾아와 유억겸의 추천서를 내놓는다.
손원일은 최용남의 능력을 인정하여 간단한 간부 양성 교육을 거친 다음, 5월 1일 참위(소위)로 임명하여, 신병교육대 교관으로 부임시켜 강기태를 돕게 한다.
1946년 6월 1일 사병계급을 도입한 해방병단은 보름 후(15일)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한다. 미 군정법령 제86호에 따라 해방병단이 조선해안경비대로 법제화되어 미군정청의 통위부(統衛部) 산하 조직으로 편입되면서, 예산과 피복, 식량 등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미 해군 맥케이브(George E. McCabe) 대령이 수석 고문관으로 파견되어, 함정 운용술, 해양 전술, 선박 검사 등의 전문 교육을 체계적으로 전수한다. 이에 손원일은 해군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긍모 중령, 김영철 중령, 김일병 중령, 장호근 소령과 함께 다듬어 도안한 깃발(태극 문양에 닻이 없음)을 해군기로 제정한다.
그즈음, 미군 수송선(LST)을 타고 부산항으로 귀국한 신현준은, 봉천군관학교 동기생 정일권( 丁一權)으로부터 해방병단 입단을 권유받는다.
기실 정일권은 지난해(1945년 12월 15일), 미군정청이 창설한 군사영어학교(1946년 2월) 입교하여 5월 1일 졸업과 함께 통위부 조선국방경비대 총참모장(대위)으로 임명되었고, 그로 인해 칼스텐이 창설을 지원하는 조선해안경비대를 알고 있는 터라 신현준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6월 22일, 신현준은 정일권의 말대로 조선해안경비대로 찾아가 절차를 걸쳐 대원으로 합류한다.
이 시기 문제의 강기태는 좌익 프락치 혐의로 보직 해임당하고, 그 자리는 최용남이 이어받는다. 얼마 후 하사관 교육대가 신설되면서 신현준은 교육주임으로 발탁되어 예비 계급장을 달고 부임한다.
한편 무보직 대기 중인 강기태는 7월 말, 자신이 포섭한 신병교육대 3중대장 이청갑 참위(소위)와 함께 무단탈영한 후 38선을 넘어 월북해 버린다. 이에 믿었던 자에게 배휼(背譎) 당한 손원일은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8월 18일 목포기지와 8월 22일 묵호기지를 창설한 조선해안경비대는, 9월에 들어서서 미 해군으로부터 보병 상륙정인 387톤급 LCI(Landing Craft Infantry) 2척을 인수한다.
그리고 9월 24일 손원일은 박옥규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부산기지를 창설한다. 10월 1일에 이르러 조선해안경비대 총사령부는 미군정청 통위부가 있는 서울로 이전하기 위해, 진해에 특설기지를 창설하고 기지장에 김성삼 부위(중위)를 임명한다.
얼마 뒤 서울로 이전한 조선해안경비대는 총참모장 신설 등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확장 개편한다. 게다가 미군정청 통위부 예하의 조선병참부대로부터 군복, 식량, 유류 등 필요한 군수품을 보급받아 조직의 안정화가 이루어지면서 위상이 한층 높아진다. 이 무렵 조함창은 일제가 버리고 간 100톤급 구잠특무정(驅潛特務艇) 목선 2척을 인수하여 수리에 들어간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이 군사적으로 격돌하여 전면전으로 번지는 걸 극도로 경계한 미군정청은, 조선해안경비대에게 해안경비만 맡길 심산으로 낡은 보조선만 수리하여 쓰도록 한다. 이에 손원일은 장호근에게 조함창에서 경비정을 만들 방법을 찾아보라는 특명을 내린다.
장호근은 문득 150마력짜리 낡은 디젤 엔진 2대를 떠올리면서, 그 엔진을 장착할 마땅한 배가 있을까 생각한다. 마침 일제가 도망치면서 망가트려 방치한 강철 선박 골격이 있었다. 녹슬고 이지러지긴 했어도 중앙을 받치는 긴 용골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비록 설계도가 없어 전체적인 구조가 파악되지 않지만, 용골을 측정하고 이화학(理化學) 시험을 통한 치수와 재질 등을 파악하여 역설계(逆設計)한다면 안 될 게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마음이 급해진 장호근은, 대원들에게 조함창 구석구석을 뒤져 쓸 만한 자재를 찾아내라고 한다.
심지어 바닷속까지 뒤져서 일제가 가져가지 못해 물속에 빠트린 오만가지 자재들까지 파악한다.
대원들은 창고, 쓰레기장, 길바닥, 바닷속 가리지 않고 찾은 부품이 될 만한 쇳덩이를 모아 기름때를 닦아내고, 맞지 않으면 주물 가공, 수작업으로 깎아내는 한편, 녹슨 연강(軟鋼) 철사를 모아 철 수세미와 모래로 녹을 긁어내고 망치로 두들겨 곧게 펴고, 석회 가루, 진흙, 일제가 남긴 화학 약품 찌꺼기를 배합해 만든 반죽을 손으로 일일이 철사에 발라 입혀 햇볕에 바짝 말려 용접봉을 만든다.
대원들이 그러는 사이 장호근은 낡은 디젤 엔진을 살려내고, 또한 코어에 코일을 감아(권선‧捲線) 만든 원동기를 엔진과 직결 연결하여 직류 발전기(7.5kW)까지 만들어 낸다. 12월, 그동안 임시 계급장을 달고 있던 신현준은 정식으로 부위(중위)가 된다.
해가 바뀐 1947년 1월…. 손원일은 조직을 군대답게 재정비하려면 노랫말만 바꾸어 부르는 일본군 군가부터 없애야 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아노라 삼면의 바다"로 시작하는 1절과 "우리는 충무의 전통이다"로 충무 정신을 알리는 2절과 "우리는 찾았다 우리의 바다"로 권리 주장하는 3절까지 완성하여 "해방행진곡(海防行進曲)"이라는 곡명을 붙여 홍은혜에게 작곡을 부탁한다. 이 무렵 조선해안경비대는 계급과 호칭이 개편되고, 2월 8일 포항기지가 창설된다.
한편 장호근은 역설계한 도면과 손으로 두드리고 깎아내어 만든 부품 그리고 수재(手才) 용접봉으로 조선 공사에 들어간다. 엔진을 앉힌 다음, 발전기와 펌프를 자리 잡고 배관과 배선…. 특히 불꽃과 그을림이 너무 심해 불량률이 높은 용접은 여러 차례에 걸쳐 덧방 한다. 그렇게 굼뜬 거북이걸음일지언정 소걸음 내딛듯 묵묵히 밤낮으로 매진한 끝에, 1947년 2월 2일 마침내 배 한 척을 만들어 낸다.
이 소식을 들은 손원일은 단숨에 진해로 내려간다.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수량 만재 287톤, 전장 46.6m, 최고 속도 13노트(약 24km/h)의 배를 둘러보는 손원일은 감격하여, 장호근의 손을 꼭 잡고 우리도 군함을 만들 수 있겠다며 눈물을 보인다. 장호근은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기술 자립을 위해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며칠 뒤 1947년 2월 7일, 진해고등해원양성소(現 해군사관학교)에서 거행되는 해군병학교 1기 졸업식에 나타난 배 한 척과 갑판 곳곳에 늠름하게 서 있는 조함창 소속 단원들. 손원일은 이 자리에서 함명 "충무공함", 함종번호 "PG-313"으로 명명한다. 정(艇)과 함(艦)의 기준은 500톤 이하이면 정(艇), 그 이상이면 함(艦)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고작 287톤인 배를 함(艦)으로 명명한 까닭은…, 눈물겹게 노력한 조함창 단원들의 노고에 대한 최고의 보답과 우리도 군함을 만들어 내고 말겠다는 커다란 염원 때문이다.
그리하여 초대 지휘관이 된 박홍철은 비록 중위일지라도 함장이 된다. 명명식을 마친 뒤 충무공함 승조원들과 해군병학교 1기 졸업생들은, 갓 입교한 2기생 86명이 보는 앞에서 해방행진곡을 우렁차게 부른다.
다음 날 손원일을 비롯한 장호근과 조함창 단원 일부 그리고 해군병학교 1기생 장교 일부가 탑승한 충무공함이 진해를 떠나 남해안을 따라 항해한다. 일행들은 충무(現 통영)항에 입항하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忠烈祠)에 참배한다. 이 자리에서 손원일과 일행들은 이순신 장군 영정 앞에 나란히 늘어서서, 이순신 장군의 후예로서 조선 수군의 맥을 잇겠노라고 고(告)한다.
그리고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한산도 제승당(制勝堂)에서는 싸우면 반드시 전투를 통제했던 이순신 장군처럼, 싸우면 기필코 이기는 후배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이 의지는 앞선 기고문<2> "아버지의 유훈(遺訓)"에서 서술하였듯이 이후 해군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렬사와 제승당 참배라는 전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