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10.14 (수)
환경스페셜

AI 연산을 정오로 옮겼더니…한국 전력망 모형서 가스 1.22GW 줄었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가 12일(현지시간) PJM의 데이터센터 등록부는 허용하고 비상시 우선 차단안은 거부했다. 한·미 전력망을 비교한 최신 모형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AI 연산을 태양광이 풍부한 낮 시간대로 옮기는 방식이 가스발전·배터리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결과와 제도 과제를 짚었다.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12일(현지시간) 미 최대 전력시장 PJM의 데이터센터 등록부 구축은 허용하면서도, 전력 비상 때 데이터센터를 먼저 차단하는 방안은 일단 받아들이지 않았다. 접속을 무조건 허용하거나 끊는 양자택일 대신, 인공지능(AI) 연산을 언제·어디서 수행할지를 전력망 여건에 맞춰 움직이는 ‘유연한 수요’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한국과 PJM을 같은 전력계획 모형으로 비교한 최신 사전논문은 그 유연성의 가치가 전력망마다 다르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는 연산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보다 태양광 발전이 많은 정오로 옮기는 편이 중요했다. 연구진의 2038년 시나리오에서 현실적인 유연성 조합을 적용하자 데이터센터 부하 7.33TWh가 시간대 사이에서 이동했고, 가스발전 설비는 20.58GW에서 19.36GW로 1.22GW 줄었다. 같은 조건에서 지역 간 이동량은 0.68TWh에 그쳤다.

랙에 설치된 서버와 냉각·배선 설비가 늘어선 미국 데이터센터 내부
미국의 데이터센터 내부 설비. 이 기사 속 연구 대상 특정 시설과는 무관한 자료사진. 사진: DOE / National Renewable Energy Laboratory (NREL) / 위키미디어 공용(퍼블릭 도메인)

한국은 ‘어디’보다 ‘언제’가 중요했다

존스홉킨스대·한국에너지공대·킹압둘라과학기술대 연구진은 8월 20일 공개한 논문에서 데이터센터 부하를 세 등급으로 나눴다. 즉시 처리해야 하는 ‘고정형’ 30%, 몇 시간 미루거나 다른 시설로 보낼 수 있는 ‘유연형’ 50%, 연간 한도 안에서 중단할 수 있는 ‘차단형’ 20%다. 연구진은 이 현실적 조합과 모든 부하를 고정형으로 간주한 기준 시나리오를 2028년과 2038년의 한국·PJM에 각각 적용했다.

한국의 데이터센터 최대수요는 연구진이 사용한 전망에서 2028년 4.9GW, 2038년 8.9GW다. 유연형 작업은 최대 24시간 안에 밀린 연산을 다시 처리하도록 했다. 이메일 검색·배치 처리·모델 학습처럼 지연을 허용할 수 있는 작업을 오전·저녁에서 낮 시간대로 옮기되, 실시간 추론이나 금융거래처럼 지연에 민감한 작업은 건드리지 않는 구조다.

2028년 한국 시나리오에서는 현실적 조합이 총 연간비용을 고정형 대비 0.26% 낮췄다. 투자비는 2.23% 늘었지만 운영비가 0.50% 줄었다. 낮 시간대 수요가 생기면서 태양광 신규 설비가 7.70GW에서 8.20GW로 늘고, 연료비가 드는 발전의 가동을 덜어냈기 때문이다. 유연성이 발전소 건설을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원을 지을지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2038년에는 작동 원리가 달라졌다. 탄소배출 상한 때문에 태양광 설비가 이미 40.93GW로 고정된 조건에서 연산 이동은 추가 태양광을 유도하기보다 ‘가상 배터리’처럼 쓰였다. 현실적 조합은 총비용을 1.24%, 투자비를 1.15%, 운영비를 1.67% 낮췄다. 배터리 설비는 1.01GW에서 0.69GW로 0.32GW 감소했고, 가스발전은 1.22GW 줄었다. 전기를 저장했다가 꺼내는 대신, 전기가 풍부한 시간까지 연산을 기다린 결과다.

한국 전력망 모형의 2038년 데이터센터 유연성 효과
한국 전력망 모형의 2038년 데이터센터 유연성 효과

PJM은 지역 이동이 설비투자를 피했다

같은 유연성 조합이 미국 PJM에서는 전혀 다른 효과를 냈다. 2038년 데이터센터 수요를 74.8GW로 놓은 시나리오에서 총비용은 고정형 대비 19.43% 감소했다. 연산 11.83TWh가 지역 사이를 이동하고 10.35TWh가 시간대 사이에서 옮겨졌지만, 연구진은 핵심 가치가 지역 이동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 부하가 집중된 버지니아 도미니언과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일리노이 커먼웰스에디슨 권역 등으로 작업을 넘기자 장기 건설기간과 큰 자본이 필요한 설비를 덜 지어도 됐다.

다만 이를 단순히 ‘송전 혼잡 해소’로 읽으면 안 된다. 논문은 PJM에서 지역별 공급능력 인정과 청정에너지 의무의 비용 차이가 더 큰 동인이었다고 분석했다. 고정형 시나리오에서 필요했던 신규 원전 8.97GW는 현실적 조합에서 0.07GW로, 저장장치는 15.62GW에서 1.52GW로, 송전 확충은 7.34GW에서 3.50GW로 줄었다. 한국과 달리 부하를 어느 지역의 의무와 공급능력 계산에 넣느냐가 비용을 좌우한 셈이다.

한국 모형에서 현실적 유연성 조합의 효과(모든 부하 고정형 대비)
기준연도총비용투자비운영비주요 물리적 변화
2028년-0.26%+2.23%-0.50%태양광 7.70→8.20GW
2038년-1.24%-1.15%-1.67%가스 20.58→19.36GW, 배터리 1.01→0.69GW

강제차단보다 먼저 필요한 계약의 언어

미국의 정책 논쟁도 ‘유연성’을 하나의 상품으로 정의하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FERC는 6월 18일 PJM을 포함한 6개 지역 전력운영기관에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수요의 접속요금을 정당화하거나 개편하라고 명령했다. 개편 항목에는 유연한 대규모 수요를 위한 새 송전서비스와 비용 전가 방지, 접속정보 투명성이 포함됐다.

하지만 유연성을 사업자 동의 없는 강제차단과 같은 뜻으로 쓸 수는 없다. FERC는 최근 PJM이 50MW 이상 신규 데이터센터에 비상시 우선 차단 위험을 지우려던 핵심 방안을 관할권 문제 등을 들어 거부했다. 대신 사업자의 공급자·가동일·전력 증설 일정·비상발전기와 연료·위치 등을 기록하는 등록부는 허용했다. ‘누가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를 먼저 측정하고, 서비스 등급과 보상 조건을 명확히 하라는 신호로 읽힌다.

현장 적용은 아직 제한적이다. 로이터가 8일 전한 미국전력연구소(EPRI) 조사에서 데이터센터가 밝힌 피크 감축 잠재력은 시설 유형별로 10~30%였지만, 실제 운영은 주로 실증사업이나 개별 계약에 머문다. 고객 지연시간을 지키면서 연산을 옮기는 소프트웨어, 유연성 이행을 검증하는 계측, 정전 위험을 누가 부담할지 정하는 계약과 요금제가 함께 있어야 규모를 키울 수 있다.

한국도 수요 전망만 높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산업통상부는 7월 27일 제16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을 발표하면서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에 따른 발전용 가스 수요 변화를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 뒤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센터를 모두 24시간 고정수요로 볼지, 지연 가능한 연산에 별도 접속요금과 보상을 줄지에 따라 필요한 가스발전·배터리·태양광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모형은 가능성을 보여줄 뿐, 계약은 현실을 견뎌야 한다

이번 결과는 실제 계통 운영의 확정값이 아니다. arXiv에 공개된 사전논문으로 저자들은 Nature Energy에 제출했다고 밝혔으며, 수요·연료비·건설비·탄소상한과 설비 후보에 관한 가정이 바뀌면 수치도 달라진다. 연구진이 둔 24시간 이내 연산 보충, 차단형 부하의 연간 감축 한도와 연속 차단 제한도 사업자별 실제 서비스 수준과 일치하는지 검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책적 질문은 선명하다. 데이터센터 전력대책을 발전소와 송전선 증설 규모로만 계산하면 수요 자체가 제공할 수 있는 조정 능력을 놓친다. 반대로 유연성을 선언만 하고 보상·검증·고객보호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사업자는 핵심 연산을 위험에 맡길 이유가 없다. 한국에서는 특히 태양광이 많은 낮 시간대에 지연 가능한 AI 학습과 배치 작업을 모으는 시간대 요금, 고정형·유연형·차단형을 구분하는 접속계약, 이행 실적을 확인할 계측 기준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얼마나 더 지을 것인가’와 함께 ‘연산을 언제 돌릴 것인가’를 전력계획의 변수로 넣을 때, AI 성장과 전력망 비용 사이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

참고자료

#데이터센터 #AI전력 #전력망유연성 #태양광 #PJM #FERC #전력수급기본계획
이
이강부
트렌드경제신문 · 기자

트렌드경제신문에서 수입차 분야를 주로 취재합니다. 국산차, 사회 기사도 함께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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