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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아비뇽서 전한 문학의 흔적 “눈 위에 글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문학의 본질과 연결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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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아비뇽서 전한 문학의 흔적 “눈 위에 글을

사라지는 존재 위에 남기는 문학의 흔적

프랑스 남부 아비뇽의 생루이 회랑(Cloître Saint-Louis)에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한강 작가를 만나기 위해서다. 12일(현지시간) 열린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프로그램 ‘카페 데 이데(Café des idées)’에서 한강은 프랑스 작가 로르 애들러와 함께 ‘어떻게 눈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How can we write about snow?)’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단상에 오른 한강은 프랑스어로 “봉주르(Bonjour)”라며 첫 인사를 건넸다. 그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하던 7년의 시간을 회상하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강은 “겨울이 오면 일부러 눈을 만지며 그 감각을 잊지 않으려 했다”며 “눈은 차갑고 부드럽고, 결국 사라지는 존재다. 우리 역시 모두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그 위에 글을 쓴다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학이 지닌 기억의 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강은 가장 절망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이라 할지라도, 읽는 이에게 “이 사람이 고통의 자리를 지나갔고 나도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감각을 준다고 강조했다. 문학이 우리를 삶 쪽으로 한 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아시아 최초 한국어 초청, K-공연으로 물든 아비뇽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은 한국의 색채가 어느 때보다 짙다. 아시아 단일 국가 언어로는 최초로 한국어가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됐다.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처럼 여러 국가에서 쓰이는 언어가 아닌 단일 국가 언어가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비뇽 거리 곳곳의 안내판에는 프랑스어와 한국어가 나란히 적혔다.

한국 작품은 1998년 이후 28년 만에 축제 공식 프로그램(IN)에 이름을 올렸다. 연극, 무용, 판소리, 다원예술을 아우르는 총 9편의 한국 공연이 관객을 맞이한다. 전통 연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긴: 연희해체프로젝트Ⅰ>은 공연 직후 마하바라타 페스티벌 바 극장에서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제주 4·3을 다룬 이경성 연출의 <섬 이야기>, 기후위기를 다룬 허성임 안무의 <1도씨>, 해녀들의 노동을 담은 <물질> 등이 축제 흐름을 잇는다. 입센상을 받은 구자하 연출은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 세 작품을 선보였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15~16일 예정된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공연이다. <오아조(Oiseau·새)>라는 이름으로 아비뇽 교황청 명예극장에 오르는 이 무대에는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낭독자로 나선다. 현지 관광객 장 뤼크는 “한강 작가의 작품은 프랑스에서도 많이 읽히고 있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기대되는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연결”이라는 기적, 개인과 정치의 경계를 허물다

한강 작가는 대담 내내 ‘연결’을 강조했다. 14살에 작가를 꿈꾸고 10년 뒤 등단하며 세상과 연결되는 기쁨을 알게 됐다는 그는, 30여 년간 이어온 글쓰기를 두고 “세상과 연결되어 왔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문학을 읽을 때 느껴지는 진실한 순간들이 결국 우리를 연결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며칠 전 아비뇽에 비가 내렸다고 들었는데, 그 비가 3년 전 서울에서 제가 맞았던 비일 수도 있다. 물이 순환하듯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소설 속에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글쓰기와 정치적인 글쓰기의 경계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을 그었다. “저에게는 개인적인 글쓰기와 정치적인 글쓰기가 나뉘지 않는다”는 답변이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모두 한국의 역사를 다루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보편적인 내면을 이야기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 그리고 그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애도를 기록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확인했다. 그는 소설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순간'이며, 그 순간을 향해 다가가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쓴다고 전했다.

축제 현장에서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영화 상영부터 정금형, 이우환 작가의 전시, K팝 버스킹, 한식 부스까지 다양한 한국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현지 관계자는 한국 공연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일부 공연은 현장에서 표를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By 남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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