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보베르가 선택한 박세영 감독의 디스토피아
칸의 황금종려상 제작자 필립 보베르가 참여한 박세영 감독의 SF 영화 '지느러미'가 22일 개봉한다. 돌연변이 '오메가'와 인간의 갈등을 다룬 디스토피아 서사다.
황금종려상 제작자가 낙점한 차세대 시네아스트의 세계관
박세영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지느러미'가 오는 22일 개봉한다. 이번 작품은 제작 단계부터 글로벌 프로젝트로 이름을 올렸다. '슬픔의 삼각형'과 '더 스퀘어' 등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배출하며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계를 이끄는 필립 보베르가 제작자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보베르는 박세영 감독의 전작 '다섯 번째 흉추'가 보여준 독창적인 시각과 비주얼에 주목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박세영 감독은 '괴인의 정체', '땅거미', '미쉘' 같은 단편 영화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특히 '다섯 번째 흉추'는 평단의 강렬한 지지를 받았다. '지느러미'는 감독이 2017년 선보였던 동명의 단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팬데믹 시기의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를 결합해 거대한 장편 서사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제작 과정은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 사이 영화의 색채와 구성은 기획 당시와는 또 다른 결과물로 완성됐다. 작품은 제78회 로카르노영화제 신인 감독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프랑스 개봉도 확정됐다.
4,000km 장벽 뒤에 숨겨진 돌연변이와 계급 갈등
영화의 배경은 심각한 해양 오염으로 인해 육지와 바다를 분리하는 4,000km의 거대한 장벽이 세워진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이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 빗방울이 입 안으로 떨어졌다. 뚝. 뚝. 뚝."이라는 대사가 암시하듯, 오염된 자연은 인간의 외형까지 변화시킨다.
유전적 돌연변이로 인해 지느러미가 돋아난 존재인 '오메가'는 이 거대한 장벽 안팎에서 살아간다. 오메가들은 길쭉한 세 개의 발가락과 지느러미를 가졌다. 이들은 차별과 혐오를 피하고자 발가락을 자르고 가짜 발 모형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숨긴다. 장벽 바깥에서는 오메가들이 강제로 오염된 바다를 청소하는 노역에 착취당한다.
신참 공무원 수진(김푸름 분)은 오메가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수진은 어느 날 바다에서 사망한 오메가의 시신을 다른 오메가들이 직접 처리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동시에 생존한 오메가 '고우'(고우 분)가 구역을 이탈해 탈출하는 모습을 본다. 고우는 추격을 따돌리고 실내 낚시터에서 일하는 미아(연예지 분)를 찾아간다. 고우가 미아에게 건넨 것은 죽은 한 오메가의 잘린 지느러미였다. 지느러미의 주인은 미아의 아버지로, 노역 현장에서 사망하며 딸에게 마지막 소망을 담아 전달한 것이다.
미아는 아버지가 오메가라는 사실 때문에 자신도 오메가라 믿으며,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원망을 품고 인간들 틈에 숨어 산다. 수진의 어머니는 방 안에 틀어박혀 오메가를 죽여야 한다는 강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수진은 미아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호의적인 시각을 갖기도 하지만, 결국 피아노 페달을 밟는 미아의 발을 보고 그녀가 오메가임을 직감해 신고한다. 신고를 받은 선배 공무원들이 무장한 채 미아의 피아노학원으로 들이닥친다.
황금소망낚시터와 독창적 미학의 결합
영화 속 주요 공간인 '황금소망낚시터'는 실제 한국의 실내 낚시터를 모티프로 한 오픈세트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물비린내가 감도는 이 공간은 화려한 조명과 반복해서 낚이는 물고기들의 상처가 공존한다. 박세영 감독은 각본, 연출, 촬영을 모두 직접 맡아 세피아 톤의 거친 질감, 강하게 보정된 색감, 지글지글한 그레인 효과를 통해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구축했다. 감독은 영화가 결코 '보기에 편한'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극의 중심을 잡는다. 미아 역의 연예지는 절제된 감정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인물을 그려냈다. 수진 역의 김푸름은 사회적 질서에 의문을 품는 공무원의 흔들리는 내면을 표현했다. 고우는 절제된 대사와 섬세한 움직임으로 두려움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박세영 감독은 과잉된 비주얼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 인공을 압도하는 오픈세트의 활용을 통해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영화 속 세계관에는 "오메가와 접촉하면 감염된다", "오메가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죽는다"는 설정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