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라도 찌워 보내야지"…하숙집 아주머니의 손맛과 90년대 대학가 풍경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학가 하숙집의 따뜻한 식탁 풍경과 치솟는 하숙비로 인해 변화해온 대학가 주거 환경의 기록을 살펴본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의 두툼한 짐 보따리로 활기를 띠는 대학가 하숙촌.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기록을 통해 살펴본 하숙집의 풍경은 단순한 숙소를 넘어, 정과 식사가 교차하던 생활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살이라도 찌워 보내야지"…하숙집 아주머니의 철칙, 푸짐한 식탁
1990년대 대학가 하숙집의 중심에는 늘 '손맛'이 있었다. KBS가 기록한 당시의 하숙집 풍경을 보면, 주인 아주머니는 30여 명의 대식구가 함께 사는 집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손수레까지 동원해 장을 보기도 했다. 주인 아저씨의 고향이 광주인 경우, 반찬이 열 가지도 기본일 만큼 식탁은 풍성했다.
하숙생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주인 아주머니의 철칙은 '하숙집 밥통은 항상 그득할지어다'였다. 학생들의 식사 중에는 메뉴가 항상 비슷해 질린다는 불평이 나오기도 했으나, 아주머니는 "데리고 있는 동안 살이라도 찌워서 내보내야지"라며 학생들의 건강을 먼저 챙기는 마음을 내비쳤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뒷산 약수터의 물을 직접 길어다 마시게 하거나, 아플 때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은 당시 하숙집이 단순한 숙박 시설 이상의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치솟는 하숙비와 변화하는 대학가 풍속도
하지만 따뜻한 정과 달리, 매 학기 반복되는 하숙비 인상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1990년대 초반, 서울 시내 대학가 하숙비는 2인 1실 기준 15만 원, 독방은 25만 원을 상회했다. 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하숙비는 매 학기 인상되었으며, 이는 학생들의 생활고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반 신촌 주변의 경우 독방은 28만 원 이상, 2인 1실은 20만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하숙비 부담을 느낀 학생들의 선택지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하숙비가 저렴하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좋은 고시원이나 독서실을 찾는 학생들이 늘어났고, 형편이 좋은 일부 학생들은 오피스텔을 찾는 등 대학가 주거 양식은 점차 다변화되었다. 특히 하숙방을 전셋방으로 바꾸는 집들이 늘어나면서 방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부족한 기숙사, '향토 기숙사'가 채운 빈자리
대학의 기숙사 수용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지방 출신 학생들의 주거 문제는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주요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이 학생 수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기에, 타지 학생들은 하숙집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 기숙사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것이 '향토 기숙사'였다. 강원도 출신 학생들을 위해 세워진 강원학사처럼, 지역 주민들의 정성으로 운영되는 기숙사는 하숙비의 절반 수준인 월 7만 원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강원학사는 평균 경쟁률이 3대 1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며, 이는 외지 학생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대안으로 기능했다. 이와 더불어 경기도와 전라북도, 충청남북도 등에서도 재경 대학생을 위한 향토 기숙사 건립이 추진되는 등 지역 사회와 대학을 잇는 노력이 이어졌다.
출처: 여의도 육퇴클럽 유튜브 「현실판 〈응답하라 1994〉 🍚 일단 먹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숙집 아주머니 손맛에 점점 포동포동해진 하숙생들 🏠 | KBS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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