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경제신문
그린정책

[데스크 칼럼] 늙어가는 이사회, ‘핏줄’만 젊은 그들... 한국 기업의 혁신 시계는 거꾸로 간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의 현주소가 담긴 성적표가 공개됐다. 결과는 참담하다. 기업을 이끄는 두뇌 격인 임원진은 10년 전보

·
[데스크 칼럼] 늙어가는 이사회, ‘핏줄’만 젊은 그들... 한국 기업의 혁신 시계는 거꾸로 간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의 현주소가 담긴 성적표가 공개됐다. 결과는 참담하다. 기업을 이끄는 두뇌 격인 임원진은 10년 전보다 더 늙었고,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며, 그나마 수혈된 ‘젊은 피’의 절대다수는 오너 일가의 핏줄이었다.

최근 공개된 CEO스코어의 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역동성 상실을 알리는 ‘경고등’이다.

■ 5060이 장악한 이사회... 잃어버린 '야성(野性)'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업 경영의 ‘허리’가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10년 전 22.3%였던 40대 임원 비중은 15.9%로 쪼그라들었고, 50대 이상은 80%를 훌쩍 넘겼다. 네이버(49.2세)를 제외하면 임원 평균 연령이 40대인 기업은 전무하다.

반면, 경영진의 시계가 아예 거꾸로 도는 곳들도 있다. 특히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금융지주사(JB금융지주 61.9세)와 10년 새 평균 연령이 4.2세나 껑충 뛴 전통 대기업(LS 60.9세)의 늙어가는 이사회는 혁신 동력의 상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80대 비(非)오너 임원마저 기재부 장관 출신의 윤증현 LS일렉트릭 사외이사(80세) 단 1명뿐이라는 사실은, 우리 기업의 이사회가 전직 관료들의 '전관예우 놀이터'이자 방패막이로 전락했음을 시사한다.

더욱 뼈아픈 것은 가장 빠르고 혁신적이어야 할 제약·바이오 등 미래 산업군의 고령화다. 알테오젠은 임원 평균 연령 62.7세로 전체 100대 기업 중 최고령 1위를 기록했고, 케어젠은 10년 새 무려 10.7세나 늙어버렸다. 실무 감각과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3040 세대가 밀려난 채,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익숙한 5060 세대가 이사회를 장악한 기업이 과연 글로벌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수 있을까? 이는 필연적으로 조직의 보수화와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혈통'이 능력을 이기는 기형적 사다리

이번 조사에서 가장 기형적인 지표는 30대 이하 젊은 임원 14명 중 12명이 오너 일가라는 사실이다. 최연소 임원인 28세의 정정길 대우건설 상무(중흥건설그룹 회장 장남)가 그 대표적인 예다. 반면, 수만 명의 직원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성과를 내며 30대에 ‘별’을 단 평사원 출신 전문경영인은 박기루 삼성전자 상무와 전해민 한미약품 상무이사, 단 2명에 불과했다.

일반 임직원은 50대 중반까지 인생을 바쳐야 오를 수 있는 자리를, 오너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2030 세대에 직행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기업 내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능력주의(Meritocracy)가 작동하지 않는 조직에서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현대판 음서제’는 우수 인재의 이탈을 부추기고, 조직 문화를 병들게 하는 가장 큰 고질병이다.

■ 법에 떠밀린 '무늬만 다양성'

여성 임원 비중이 10년 전 175명(2.6%)에서 608명(8.3%)으로 증가하고,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던 기업이 51곳에서 8곳으로 줄어든 것은 표면적으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봐야 한다. 이는 기업의 자발적인 쇄신이 아니라, 자본시장법 개정안(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에 떠밀린 결과에 가깝다.

실제로 구색 맞추기식 외부 사외이사 영입으로 할당량만 채웠을 뿐, 내부에서 훈련받고 성장한 여성 핵심 경영진의 비율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Diversity)은 실종된 채, 보여주기식 ESG 경영과 법적 요건 채우기에만 급급하다는 씁쓸한 방증에 불과하다.

■ 골든타임을 잡기 위한 3가지 제언

10년 전 유일한 '60대 임원 기업'이었지만, 뼈를 깎는 쇄신으로 평균 연령을 4.1세나 낮춘 GS(58.3세)의 사례는 한국 기업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늙고 둔한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결단이 시급하다.

우선 나이와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성과 위주로 30대 실무진을 파격 발탁하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사외이사의 권한을 강화하여 오너 일가의 묻지마식 승진을 철저히 검증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표면적인 수치 채우기가 아닌 내부의 젊은 인재와 여성 인재 육성 성과를 실질적 다양성 지표(DEI)로 삼아 최고경영자 평가(KPI)에 강제 연동시켜야 한다.

54세의 낡은 엔진에 28세 오너의 엠블럼만 단 자동차는 글로벌 레이스에서 결코 우승할 수 없다. 기업의 시계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흘러야 한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By 트렌드경제신문
이 이슈, 톡 공유하기
N B K LINE X f @ BS TG WA in R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