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경제신문
트렌드연예

판영진 11주기, '나비두더지'를 다시 보다

고 판영진 11주기를 맞아 독립영화 '나비두더지'와 배우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
판영진 11주기, '나비두더지'를 다시 보다

배우 고(故) 판영진이 세상을 떠난 지 11년이 됐다. 2015년 6월 22일 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가좌동 자택 앞에 세워진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는 향년 58세였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당시 조사는 생전 경제적 어려움과 우울증을 겪었다는 유족 진술을 바탕으로 이어졌다. 11주기를 맞은 지금 다시 꺼내야 할 이름은 비극의 마지막 장면만이 아니다. 판영진은 오랜 무명 끝에 독립영화 한 편으로 관객 앞에 자신의 얼굴을 새긴 배우였다.

데뷔 28년 만에 맡은 주연

판영진의 대표작은 서명수 감독의 장편 독립영화 <나비두더지>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는 그가 이 영화에서 경식 역을 맡았고, 1979년 영화 <밤의 찬가>에도 출연한 배우로 남아 있다. 활동 이력이 길게 정리된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나비두더지>의 주연은 더 무겁게 다가온다. 1978년 데뷔 이후 긴 시간을 지나 잡은 주연 자리였고, 그가 연기한 경식은 지하철 기관사로 살아가며 사고와 빚, 가족 문제를 한꺼번에 떠안는 인물이다.

이 작품은 2008년 2월 개봉한 83분짜리 한국 드라마로, 관객 수가 크지 않은 독립영화였다. 하지만 영화가 던진 질문은 작지 않았다. 지하철 선로와 어두운 터널, 되풀이되는 하루를 통해 노동자가 견디는 피로와 마음의 상처를 바라봤고, 판영진은 그 무게를 화려한 표정 대신 눌러 삼키는 얼굴로 끌고 갔다. 스타 시스템 바깥에서 오래 버틴 배우에게 이 배역은 단순한 출연작 이상이었다. 늦게 찾아온 기회였고, 그가 어떤 배우였는지 설명해 주는 거의 유일한 공개 기록에 가깝다.

비극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얼굴

판영진의 이름은 사망 보도와 함께 더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추모 기사마다 생활고와 우울증, 마지막 문자 같은 말들이 반복된다. 필요한 사실 확인은 해야 하지만, 한 배우의 생을 마지막 순간으로만 줄여 말하는 방식은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 특히 독립영화 현장은 긴 무명과 불안정한 생계가 낯설지 않은 곳이다. 판영진의 경우도 개인의 고통을 선정적으로 소비하기보다, 오래 연기해 온 사람이 왜 뒤늦게 주연으로 불렸고 그 영화가 무엇을 보려 했는지를 함께 놓고 읽을 때 더 온전해진다.

<나비두더지>는 지하철 기관사들이 겪는 반복 노동과 심리적 압박을 다룬 작품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소개 글에서도 이 영화는 지하철을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고된 노동과 고통이 쌓이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판영진이 맡은 경식 역시 그 안에서 점점 몰리는 사람이다. 현실의 배우 판영진을 그 인물과 곧바로 겹쳐 볼 수는 없지만, 영화가 붙잡으려 한 얼굴과 배우가 지나온 시간이 서로를 비춘다는 점은 분명하다.

오늘의 추모가 남길 일

11주기에 필요한 말은 거창한 미화가 아니다. 판영진은 늦게 찾아온 주연 기회로 독립영화 관객에게 기억됐고, 그의 죽음은 무명 배우와 독립영화 노동이 처한 불안정한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오늘 그를 떠올리는 일은 슬픈 사건을 반복 소비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나비두더지> 속 경식이라는 이름, 그리고 그 배역을 끝까지 밀고 간 배우 판영진의 얼굴을 함께 기억하는 것. 그것이 11년 뒤에도 이 추모 기사가 필요한 이유다.

By 차도윤 기자
이 이슈, 톡 공유하기
N B K LINE X f @ BS TG WA in R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