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밑 빠진 독'에 그린 헛된 청사진… '오너 3세' 떠난 교보라이프플래닛, 13년 표류의 종착역
'최초'와 '혁신'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훈장처럼 달고 출범했던 기업이,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본의 밑바닥만을 확인했다면 이를 무엇이라
'최초'와 '혁신'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훈장처럼 달고 출범했던 기업이,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본의 밑바닥만을 확인했다면 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국내 유일의 전업 디지털 생명보험사로 기대를 모았던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이하 교보라플)의 현재 모습은 혁신의 성공 방정식이 아닌, 자본시장의 무모한 과신이 초래한 뼈아픈 실패작에 가깝다. 오너 3세의 상징적 이탈과 참담한 누적 적자라는 이중고 속에, 기업의 존립 근간을 뒤흔드는 냉혹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 3700억 수혈로 연명한 13년… '디지털 생보사'의 비참한 자화상
교보라플이 걸어온 길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세간의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2013년 출범 이후 모회사인 교보생명으로부터 수혈받은 자금만 무려 3700억 원에 달하며, 쌓인 순손실만 2000억 원을 넘어섰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동안 회사가 보여준 성과는 단 한 번도 흑자라는 결실을 맺지 못한 연속된 적자의 기록뿐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영업이익률 -32.72%, 자기자본수익률(ROE) -14.17%라는 숫자는 이 기업이 처한 재무적 고사(枯死)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렴한 미니보험 중심의 라인업은 규모의 경제를 형성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거대 플랫폼들의 시장 침투 속에서 고유의 수익 영역 구축마저 실패했다. 13년간 단 한 차례도 스스로의 자생력을 입증하지 못한 기업을 향해 시장이 느끼는 피로감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 든든했던 '오너 3세'의 이탈, 껍데기만 남은 디지털 신화
더욱 뼈아픈 대목은 그간 회사의 디지털 전환을 진두지휘하며 거대한 우산 역할을 해주던 '오너 3세' 신중현 전 디지털전략실장의 이탈이다. 지난 4월 타 계열사로 자리를 옮긴 신 전 실장의 이동은 단순한 임원 인사를 넘어, 교보라플이 그룹 내에서 가졌던 전략적 위상과 추진력이 결정적으로 상실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너가 3세의 디지털 경영 시험대'라는 상징적 방패막이가 사라진 지금, 모회사인 교보생명 역시 추가 자금 지원에 선을 그으며 냉정한 자생력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동안 '디지털 실험실'이라는 명목하에 용인되던 막대한 손실은 더 이상 오너의 그늘 뒤에 숨을 수 없게 되었다. 특혜와 관대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오롯이 시장의 냉정한 잣대만이 남았다.
■ 안방 수익 모델 부재, 기술적 수식으로 덮을 수 없는 본질
상황이 이러함에도 최근 AI 기반 '보험비서' 출시나 보장성 보험 확대, 나아가 클라우드 플랫폼 '라플레이'를 통한 해외 진출 등 경영진이 내놓는 체질 개선 방정식은 여전히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조차 13년째 자체 수익 모델을 입증하지 못한 채, "글로벌 보험 시장에 디지털 메커니즘을 전파하겠다"는 거창한 청사진을 내거는 모습은 장밋빛 비전이라기보다 현실 도피성 수사(修辭)에 가깝다.
안방의 서식지조차 지키지 못해 휘청거리는 기업이 외치는 해외 확장론은 결여된 내실을 덮기 위한 외롭고 쓸쓸한 웅변에 불과하다.
■ 독립 모델의 한계 인정하고 뼈를 깎는 수술대 올라야
자본시장은 더 이상 성과 없는 명분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미 업계 안팎에서는 '독립형 디지털 보험사'라는 사업 모델 자체가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서늘한 진단이 지배적이다. 별도 법인을 고집하기보다 모회사 내부로 흡수 재편해 실질적 시너지를 도모한 캐롯손해보험과 한화손해보험의 결단은 교보라플에 묵직한 시사점을 던진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은 이제 허황된 미래의 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 단순한 신상품 출시나 외곽 타개책으로 건널 수 있는 건너목은 이미 지났다. 독립 법인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내지 못한다면, 흡수 통합을 포함한 뼈를 깎는 구조적 수술대에 오르는 것만이 자본시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