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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이만수의 힘] 섬진강 너머 피어난 이웃의 정(情), 아직 세상은 참 살 만한 곳

삼성 라이온즈 초창기 시절, 대구에서 전라도 광주로 원정 경기를 떠나는 길은 제법 멀고 수고로운 여정이었다. 88올림픽고속도로조차 개통되기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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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이만수의 힘] 섬진강 너머 피어난 이웃의 정(情), 아직 세상은 참 살 만한 곳

삼성 라이온즈 초창기 시절, 대구에서 전라도 광주로 원정 경기를 떠나는 길은 제법 멀고 수고로운 여정이었다. 88올림픽고속도로조차 개통되기 전이었기에, 경남 진주를 빙 둘러 가거나 대전을 거쳐 가야만 광주에 닿을 수 있었다.

◆ 굽이굽이 돌아가던 광주 원정길, 그리고 화개장터

그 먼 길을 오갈 때면 으레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을 건너야만 했다. 섬진강 어귀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화개장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랫마을 하동 사람들과 윗마을 구례 사람들이 오랜 세월 서로 왕래하며 끈끈한 정을 나누던 곳. 비록 한때 얄궂은 소문으로 서먹해진 시절도 있었다고 하나, 내 기억 속 그곳은 늘 정겨운 풍경으로 남아 있다.

◆ 섬진강 재첩국에 담긴 가족과의 따뜻한 추억

그 시절의 기억은 혹독했던 시즌이 끝난 후 가족들과 함께 떠났던 남도 여행으로 이어진다. 전라도를 거쳐 경남으로 넘어가던 길목, 섬진강 변에서 맛보았던 뽀얀 재첩국과 고소한 재첩전의 맛은 강산이 여러 번 바뀐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가족들과 마주 앉아 푸짐하고 맛깔스러운 식사를 나누고, 다시 강을 건너 화개장터에서 왁자지껄하게 장을 보며 웃음꽃을 피웠던 기억들.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풍경은 여전히 우리 가족의 앨범 속에 가장 따뜻하고 선명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 지역의 벽을 허문 우리 동네, 허물없는 사우나 모임

지금 내가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동네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이웃들이 모여 산다.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출신 지역을 불문하고 서로 허물없이 어울리며, 때로는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다. 종종 부부 동반으로 한자리에 모일 때면, 굽이쳐 온 각자의 인생사를 나누느라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특히 동네 사우나 모임은 우리 이웃들의 정이 가장 진하게 묻어나는 곳이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서울, 그리고 인천 토박이까지 전국 팔도의 사내들이 다 모여 있지만, 지난 4년 동안 지역색으로 인해 얼굴을 붉히거나 마음이 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맏형 김노중 회장님의 크고 따뜻한 품

우리 사우나 멤버 중 가장 연장자이신 김노중 회장님은 전라도 출신이시다. 하지만 경상도 사내인 나를 언제나 변함없이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든든한 큰형님이시다.

특히 내가 헐크파운데이션 일로 어려움을 겪거나 동남아시아로 야구 보급을 떠날 때면, "함께 돕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무도 모르게 분기별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넉넉하고 깊은 마음씨를 지니셨다.

사우나 멤버들이 모여 식사라도 할 때면 서로 밥값을 내겠다며 정겨운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회장님은 동생들의 순서를 다정하게 정리해 주시면서도, 정작 모임에서 가장 자주, 그리고 기꺼이 지갑을 여시는 분이다. 뜻깊은 일이 생겨 십시일반 마음을 모을 때도 늘 앞장서서 큰형님의 역할을 다해주신다.

◆ 승부의 세계를 벗어나 비로소 마주한 '진짜 삶'

내 아내는 평소 사람 많은 모임에 나서는 것을 썩 즐기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동네 이웃들과의 모임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으려 한다. 이해관계나 얄팍한 계산 없이,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의 삶과 인생을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밤에도 우리는 이웃들과 어울려 늦은 시간까지 웃음꽃을 피웠다. 나는 반세기가 넘는 56년의 세월을 오직 야구라는 한길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만약 내가 여전히 그 치열한 승부의 현장에만 머물러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면, 이토록 평안하고 따뜻한 이웃의 정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만, 때로는 그 얕은 스침조차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각박한 세상이다. 하지만 곁에 있는 이웃들과 맑은 인연을 맺고 슬픔과 기쁨을 온전히 나누며 살아가는 지금, 나는 가슴 깊이 깨닫는다. 아직 세상은, 참 살 만한 곳이라는 것을.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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