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 대신 독한 역할 했다"…장녀들의 무거운 책임감과 눈물
가족의 생계와 동생들의 성장을 책임져야 했던 장남과 장녀들의 고백을 통해, '첫째'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와 그 속에 담긴 희생을 조명한다.

가족 안에서 '첫째'라는 위치는 때로 단순한 순서를 넘어선 무게로 다가온다. 최근 방송된 유튜브 채널 '동치미'에서는 출연자들이 각자의 가정에서 장남 혹은 장녀로서 짊어져야 했던 책임감과 그 과정에서 겪은 삶의 굴곡을 털어놓았다.
"형님이 대줄게"…청학동 훈장을 만든 장남의 결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남의 역할은 때로 개인의 꿈보다 가족의 안위를 우선하게 만든다. 김봉곤 훈장은 지리산 해발 900고지에서 태어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큰형의 희생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집안의 주 수입원은 산에서 채취한 '산죽'을 이용한 김 생산이었다. 형님들이 고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상황에서, 학문을 배우고 싶어 유학을 꿈꾸던 김 훈장은 열여섯 살의 나이에 형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집안 형편상 매달 일정 금액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나, 큰형은 "우리도 못 해봤지만 네가 해봐라"라며 유학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단했다.
이러한 형님의 지지 덕분에 김 훈장은 전주로 나가 세상을 접할 수 있었고, 한학을 바탕으로 서당을 운영하며 판소리, 음반 활동, 영화 출연 등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으며 지금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큰형의 결단이 막내인 자신의 인생을 바꾼 큰 복이었다고 덧붙였다.
"엄마 대신 동생들 혼냈다"…장녀의 어깨에 놓인 짐
장남이 집안의 결정권을 쥐는 역할을 한다면, 장녀는 부모의 빈자리를 채우며 동생들을 돌보는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한 출연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하면서, 동생들을 보살펴달라는 약속을 받아들여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당시 방 하나에서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으며, 본인이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엄격하게 훈육하는 '독한 역할'을 자처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동생들의 공부와 생활을 점검하며 엄하게 대했기에 동생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이는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책임감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러한 성향은 이어졌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첫째, 둘째, 셋째 구분 없이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자신과 같은 짐을 지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무의식중에 여전히 첫째로서 자녀들을 챙기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길 잃은 어린 시절과 언니에 대한 복잡한 마음
장녀로서 겪은 고생은 단순히 정신적인 책임감에 그치지 않고, 생존과 직결된 물리적 고단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 출연자는 어린 시절 가락시장에서 배추 장사를 하던 어머니를 대신해 언니와 함께 이른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던 기억을 회상했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소풍을 갔다가 버스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종점까지 가게 된 아찔한 경험을 공유했다. 당시 어린 나이에 길을 잃고 당황하던 상황에서, 버스 기사에게 간곡히 부탁해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일화를 전하며, 당시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언니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다만, 가족의 경제적 상황이 급변하며 겪었던 아픔은 언니와의 관계에 복잡한 감정을 남겼다. 집안이 부도를 맞으며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상황 속에서, 홀로 남겨진 언니가 겪어야 했던 고생을 지켜보며 느낀 미안함과 죄책감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현재 언니와 때로 의견 충돌을 겪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자신을 지켜준 언니에 대한 고마움은 변함없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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