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10.15 (목)
한국영화

한국영화 ‘각본’ 크레디트 기준 만든다…2027년 공표 앞둔 세 관문

영화진흥위원회가 10월 8일 한국영화 시나리오 크레디트 기준 초안을 공개하고 업계 의견을 들었다. 2027년 규칙 공표를 목표로 하지만, 실제 작가 기여를 공정하게 가리려면 집필본의 변경 이력 보존, 독립적인 중재 절차, 결과의 경력정보 반영 방식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0월 8일 서울 영진위 표준시사실에서 ‘창작의 기록, 저작자의 이름’ 포럼을 열고 한국영화 시나리오 크레디트 기준 초안을 공개했다. 영진위 연구진은 완성된 시나리오에 대한 실제 기여를 중심에 두고, 최종 촬영고를 기준으로 스토리·각본·각색의 표시를 가르며, 이견이 생기면 작가 간 조정 뒤 제3자 중재로 넘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지난 7월 먼저 공개된 설명에 따르면 목표 시점은 2027년 규칙 공표다.

여러 명의 영화 글쓰기 학생들이 노트북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모습
영화 글쓰기 수업에서 학생들이 노트북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다. 기사 속 한국영화 포럼과 직접 관련 없는 자료사진. 사진: vancouverfilmschool / Flickr(CC BY 2.0)

법에 있는 ‘이름표시권’, 현장에는 판단 절차가 없다

논의의 출발점은 권리의 부재가 아니라 절차의 공백이다. 저작권법 제12조는 저작자가 저작물의 원본이나 복제물, 공표 매체에 자신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저작물을 이용하는 쪽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저작자가 표시한 대로 이름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수년에 걸쳐 초고를 고치고 제작 과정에서 장면과 대사를 다시 쓰는 영화에서는 ‘누구의 이름을 어떤 역할로 올릴 것인가’를 법 조문만으로 가리기 어렵다.

영진위가 4월 공개한 161쪽짜리 연구보고서가 바로 이 간극을 다뤘다. 보고서는 국내 시나리오 크레디트의 문제와 법적 쟁점, 해외 제도, 미국작가조합(WGA) 규정의 적용 가능성, 작가·감독·제작자 대상 심층면접과 설문, 가이드라인 초안과 제도화 방안을 한 묶음으로 검토했다. 10월 포럼은 이 연구에서 만든 초안을 업계에 다시 보여주고 의견을 받는 후속 단계다. 아직 확정된 의무 규정이나 새 법률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엔딩 자막의 한 줄이 지원 자격과 경력증명이 된다

크레디트는 작품 끝에 잠깐 지나가는 이름 이상의 경제적 기록이다. 영진위의 2026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은 극장 개봉 장편영화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영화·시리즈, 드라마에서 시나리오 또는 각색 크레디트를 한 편 이상 받은 사람의 응모를 제한한다. 반면 ‘윤색’만 표시된 사람은 신인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집필 노동이라도 최종 표시가 ‘각색’인지 ‘윤색’인지에 따라 공적 지원사업 참여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영진위의 2026년 사업계획과도 연결된다. 영진위는 올해 영화 크레디트 정보 수집 창구와 영화정보 통합창구를 마련하고, 2027년 이후에는 크레디트와 표준계약서 자료를 바탕으로 참여 기간·계약 기간·업무 내용을 포함한 공신력 있는 경력확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잘못 매겨진 크레디트가 데이터베이스에 굳으면 다음 계약과 공모 자격, 경력 증명의 출발점까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공표 시점보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표시를 예방하고 고칠 수 있는 운영 규칙이다.

시나리오 크레디트 판단 절차에 필요한 네 단계
시나리오 크레디트 판단 절차에 필요한 네 단계
시나리오 크레디트 기준이 작동하려면 기여도 원칙뿐 아니라 증거·조정·중재·정정 절차가 연결돼야 한다. 트렌드경제 정리.

첫 관문은 ‘최종 촬영고’에 이르는 기록이다

초안은 최종 촬영고에 대한 기여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결과물 중심 원칙은 명료하지만, 마지막 파일만 놓고 보면 아이디어의 뼈대를 만든 초고와 인물·구조를 바꾼 중간본의 기여가 지워질 수 있다. 제작사가 최종본만 보관하거나 파일명이 뒤섞여 작성 시점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중재는 기억과 진술의 경쟁으로 흐른다.

최소한 계약 체결 뒤 만들어진 모든 주요 집필본에 작성자·전달일·변경 범위를 기록하고, 제작사와 작가가 같은 원본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 대사 수정과 감독·배우의 제안, 원작 또는 트리트먼트에서 가져온 부분도 별도로 표시할 필요가 있다. 계약서에서 미리 특정인의 크레디트를 확정하는 방식과 실제 기여를 사후 판단하는 방식이 충돌할 때 어느 절차가 우선하는지도 규칙에 담겨야 한다.

둘째 관문은 조정과 중재의 독립성이다

미국작가조합의 공식 크레디트 매뉴얼은 비교할 만한 절차를 보여준다. 참여 작가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하지 못하면 경험 있는 작가들 가운데 세 명으로 중재위원회를 구성하고, 결과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배제한다. 심사 자료에서는 작가를 A·B처럼 익명으로 표시하며, 중재인들은 날짜와 작성자가 확인된 집필 자료를 각자 읽는다. 이의 제기도 기여도를 처음부터 다시 따지는 재심이 아니라 규정과 절차가 제대로 적용됐는지를 살피는 데 한정한다.

한국 초안이 ‘작가 간 조정 후 제3자 중재’라는 두 단계만 제시한 채 세부를 비워둔다면 제3자가 누구인지부터 새 분쟁이 생길 수 있다. 중재 후보군의 자격, 제작사와의 최근 거래 등 이해충돌 공개, 당사자의 기피 신청, 자료 제출 기한, 익명화 방식, 결정문에 적을 이유의 범위를 미리 정해야 한다. 제작 일정에 밀려 한쪽이 자료를 보지 못한 채 합의를 강요받지 않도록 통지와 답변 기간도 필요하다.

셋째 관문은 ‘각색’과 ‘윤색’의 경계다

영진위는 미국 기준을 참고하되 국내에서 넓게 쓰여온 ‘각색’의 현실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형 기준의 시험대다. 원작을 영화화한 작업, 기존 각본의 구조를 대폭 바꾼 작업, 대사와 표현을 다듬은 작업을 어떤 이름으로 구분할지 합의하지 않으면 같은 노동이 작품마다 다르게 표시될 수 있다. 특히 공모전 규정처럼 ‘각색’과 ‘윤색’이 제도상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에는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다.

일률적인 기여 비율만 정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구조·인물·장면·대사 등 기여 유형을 어떻게 평가할지, 공동 집필과 순차 집필을 어떻게 구별할지, 촬영 중 새로 쓰인 장면을 누가 증명할지를 함께 안내해야 한다. 작품 규모와 제작 방식이 다른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에 같은 자료 제출 부담을 요구할지도 검토 대상이다. 간소한 합의서와 표준화된 버전 기록 양식을 제공하면 소규모 제작사의 행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증거를 남길 수 있다.

공개된 초안의 방향과 제도 설계 과제
구분공개된 방향실무에서 명시할 사항
판단 대상완성된 시나리오에 실제 기여한 사람초고부터 최종 촬영고까지 버전·날짜·작성자 기록
표시 구분최종 촬영고 기여에 따라 스토리·각본·각색 구분윤색·현장 수정·공동 집필의 경계와 증명 방법
분쟁 처리작가 간 조정 뒤 제3자 중재중재인 선정, 이해충돌 회피, 제출 기한과 이의 절차
사후 반영크레디트 확정극장판·OTT판·영화정보 DB·경력확인 자료의 정정 순서

확정 뒤에도 엔딩·DB·경력기록을 함께 고쳐야

중재 결과가 나와도 화면 속 자막만 바뀌고 영화정보 데이터베이스나 경력확인 자료가 그대로라면 피해는 남는다. 극장 상영본, 영화제 제출본, 온라인동영상서비스 공개본처럼 여러 버전이 존재할 때 정정 가능한 범위와 순서를 정하고, 영진위 데이터베이스에는 변경 전후와 확정일을 남기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미 공개된 영상 파일을 즉시 교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작품 정보 페이지에 정정 사실을 먼저 표시하는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초안의 의미는 ‘누가 더 많이 썼는가’를 한 번 가르는 데 있지 않다. 집필 과정의 기록을 계약 단계부터 남기고, 이해관계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같은 증거를 보며, 확정된 결과가 공적 경력정보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2027년 공표를 서두르기보다 올해 의견수렴에서 기록 양식, 중재인의 독립성, 정정 절차까지 공개해야 크레디트가 명예와 경력의 증명으로 기능할 수 있다.

참고자료

#한국영화 #시나리오 #크레디트 #성명표시권 #영화진흥위원회 #작가 #WGA
이
이강부
트렌드경제신문 · 기자

트렌드경제신문에서 수입차 분야를 주로 취재합니다. 국산차, 사회 기사도 함께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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