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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20 (화)
기업소식

95%가 초소형 기업…이탈리아 '장인정신'이 만든 양날의 검

이탈리아 경제의 근간인 가족 기업들이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경영권 유지와 규모 확장 기피로 인해 성장이 정체되는 구조적 한계를 분석한다.

95%가 초소형 기업…이탈리아 '장인정신'이 만든 양날의 검
여성이 초록색과 빨간색이 섞인 작은 주전자를 들고 웃고 있다. (사진=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유튜브 영상 캡처)

이탈리아 가정의 아침을 깨우는 보글보글한 소리. 1933년 탄생한 모카포트(Moka Pot)가 끓어오르는 소리는 이탈리아의 일상을 상징한다. 이 도구를 만든 '비알레티(Bialetti)'는 1919년 설립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가족 기업이다. 창업자 알폰소 비알레티가 아내의 빨래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한 이 혁신적인 도구는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과 기술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비알레티의 탄생 배경은 흥미롭다. 알루미늄 주조 기술을 익혔던 창업자 알폰소 비알레티는 당시 카페에서 비싸게 마셔야 했던 에스프레소를 집에서도 즐기고 싶어 했다. 그는 아내가 빨래를 할 때 사용하는 '레시버(Receiver)'라는 알루미늄 통과 굴뚝 모양의 장치에서 힌트를 얻었다. 비눗물을 넣고 가열하면 증기가 관을 타고 올라와 물을 분사하는 원리를 커피 추출에 적용한 것이다. 이 혁신적인 도구는 1933년 처음 개발되었으며, 이후 아들 레나토 비알레티가 뛰어난 마케팅 수완을 발휘하며 이탈리아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비알레티의 캐릭터는 지금도 제품에 새겨져 있으며, 제품이 워낙 견고해 대를 이어 물려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알레티의 사례는 이탈리아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비알레티는 2000년대 초반 캡슐 커피 시장의 급성장과 맞물려 위기를 맞았다. 자체적인 캡슐 머신 등을 개발하며 다양화를 시도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파산 위기에 처했다. 대를 이어 경영권을 유지하며 '가족 기업'의 명맥을 이어오던 전통적인 방식이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과 충돌하며 결국 외부 자본의 손을 빌려야 했던 것이다. 결국 비알레티는 지난해 홍콩계 사모펀드인 NUO 캐피탈에 매각됐다. NUO 캐피탈은 홍콩의 해운 가문과 에르메스 가문 후손 등이 참여한 투자 회사로, 현재 비알레티를 인수해 돌체앤가바나, 오징어 게임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며 회사를 살려내고 있다.

해담경제연구소 어예진 소장이 언더스탠딩을 통해 분석한 이탈리아 경제의 핵심은 '작지만 강한 기업들의 집합체'라는 점이다. 2023년 기준 이탈리아 기업의 94.8%, 즉 약 95%는 직원 수가 10명 미만인 초소형 기업이다. 직원 250명 이상의 대기업은 단 0.1%에 불과하며, 그 숫자는 약 4,500개 정도로 추산된다. 이탈리아 전체 기업 중 가족이 운영하는 가족 기업의 비중은 85%에 달하며, 연 매출 2,000만 유로(약 300억 원) 이상의 중견급 기업 중에서도 66%가 가족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 국가 고용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실제로 2024년 통계에 따르면 20명 미만의 영세 기업이 차지하는 고용 비중은 52%를 상회하며, 이는 독일(28%)이나 프랑스(34%), EU 평균(40% 미만)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규모는 작아도 생산성은 압도적, '클러스터'가 만든 경쟁력

이탈리아의 이러한 구조는 언뜻 보면 경제 성장의 걸림돌처럼 보인다. 실제로 20명 미만의 영세 기업 단계에서 이탈리아의 1인당 노동 생산성은 4만 유로대로, 독일이나 프랑스는 물론 유럽연합(EU) 평균보다도 낮다. 하지만 반전이 존재한다. 기업 규모를 50명 이상의 중견·대기업으로 확대하면 이탈리아의 1인당 생산성은 9만 유로를 상회하며 독일과 프랑스를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다.

이는 이탈리아 특유의 '산업 클러스터' 구조 덕분이다. 이탈리아는 섬유, 가죽, 가구, 기계 등 특정 산업 분야에서 숙련된 기술을 가진 소규모 기업들이 지역 단위로 모여 수평적으로 협력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과거 정부가 철강, 에너지, 조선 등 대규모 산업을 직접 육성하는 동안, 민간 가족기업들은 전문 기술과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며 성장했다. 중세 시대부터 이어진 수공업 전통과 도시 국가 중심의 상업 발전이 축적된 결과로, 개별 기업은 작지만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이루며 세계 시장에 강력한 경쟁력을 공급한다. 이는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하청 구조가 발달한 한국의 중소기업 구조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성장을 가로막는 '가족 경영'의 덫과 노동 구조

문제는 이 '작지만 강한' 구조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가족 기업들은 경영권 유지를 위해 외부 자본을 유치하거나 기업공개(IPO)를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규모를 키워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보다는, 현재의 수익을 유지하며 가족의 통제권을 지키는 방향을 택한다. 이는 기업의 신산업 진출과 혁신을 늦추는 요인이 된다.

구조적인 제도 역시 기업들이 덩치를 키우지 않도록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 이탈리아는 노동자의 해고를 어렵게 만드는 조항이 주로 15인 이상 사업자에 적용되는 특성이 있다. 기업들이 규모를 확장해 고용 부담을 지기보다는, 10명 미만이나 15명 미만의 소규모 형태를 유지하며 '알짜 수익'을 챙기는 방식을 선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즉, 기업들이 더 성장하려 해도 규모를 쪼개어 작게 유지함으로써 규제를 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경제는 세계적인 제품을 만드는 능력은 갖췄으나, 이를 글로벌 대기업으로 키워내는 데에는 한계를 보이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청년 취업난과 인재 유출, 이탈리아 경제의 미래 과제

가족 중심의 소규모 경제 구조는 사회적 문제로도 이어진다. 기업들이 성장을 멈추고 규모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면서 노동 생산성의 정체와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고 있다. 혁신적인 신산업으로 인재가 유입되지 못하면서 우수한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의 핵심 딜레마는 세계적인 제품을 만드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이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탈리아 경제의 향후 과제는 전통적인 장인 정신과 가족 경영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외부 자본과 혁신 기술을 수용해 기업의 규모를 확장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비알레티가 사모펀드에 매각된 후 글로벌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모습은, 이탈리아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직면해야 할 변화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유튜브 「명품·커피 세계 최고 이탈리아가 '가족 경영'에 갇혀 20년 주가 저주에 빠진 이유 (해담경제연구소 어예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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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임상우
트렌드경제신문 · 기자

트렌드경제신문에서 경제 분야를 주로 취재합니다. 기업소식, 금융 기사도 함께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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