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이어온 하동 정씨 가문의 고집, 솔송주에 담긴 시간
500년 넘게 이어져 온 하동 정씨 가문의 전통주 솔송주를 빚는 박흥선 명인의 제조 과정과 계승 기록을 담았다.</
경남 함양군 개평마을, 남강으로 흐르는 물길 사이 평탄한 길목에는 500년 세월을 간직한 눌째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하동 정씨 가문의 정신과 삶의 태도가 담긴 유산이 흐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전한 이 기록에는 500년 넘게 맥을 이어온 전통주, 솔송주를 빚는 대한민국식품명인 제27호 박흥선 명인의 시간이 담겨 있다.
자연이 허락한 2주의 시간, 송순 채취부터 누룩 빚기까지
솔송주는 본래 계절주다. 4월 말에서 5월 중순 사이, 솔잎의 향이 가장 선명하게 올라오는 시기에 맞춰 빚는다. 박흥선 명인에 따르면 송순이 올라오는 시기는 고작 2주 남짓이다. 자연이 허락한 이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명인의 손길은 매년 봄이면 분주해진다.
술의 향을 결정하는 송순은 채취만큼이나 손질이 중요하다. 너무 강한 향보다는 은은한 향을 내기 위해 10~15cm 정도의 어린 송순(모엽)을 사용한다. 깨끗한 물에 씻어낸 송순은 반드시 한 번 찌는 과정을 거친다. 송순에 남아 있는 탄닌 성분의 떫은맛을 줄여 술맛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김을 머금고 나온 송순은 노르스름한 빛을 띤다.
술의 바탕이 되는 누룩을 만드는 과정도 정교하다. 곱게 빤 밀기울에 물을 더해 반죽한 뒤, 발효틀에 넣고 꾹꾹 눌러 밀도를 높인다. 내부 수분을 적절히 잡아줘야 발효 환경이 안정적으로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누룩은 사람의 온기와 시간이 더해져 술의 기초가 된다.
밑술과 덧술의 조화, 이양주 방식으로 완성하는 깊은 맛
본격적인 술 빚기는 찹쌀죽을 끓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쌀을 깨끗이 씻어 불린 뒤 빻아서 죽을 끓이고, 이를 식힌 뒤 누룩과 버무려 밑술을 만든다. 솔송주는 밑술에 술을 더 빚는 '이양주'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밑술이 안정되어야 발효에 힘이 생기고 술의 깊이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밑술이 완성되면 다시 덧술을 빚는다. 이때 미리 쪄둔 송순과 고두밥을 더한다. 쪄낸 송순과 고두밥, 밑술이 재료 하나하나 고루 어우러지도록 손으로 정성껏 버무리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숙성은 계절의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여름에는 약 3주, 겨울에는 45일에서 50일 동안 천천히 익히며 맛을 완성한다.
발효가 끝나면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낸다. 발효를 마친 술은 증류를 통해 소주로 얻기도 하며, 발효와 증류 방식을 결합한 혼향주로도 제조된다. 박흥선 명인은 "술을 많이 마시면 독이 되지만,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며 "좋은 술을 빚어 사람들이 기분 좋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리산의 푸른 기운을 품은 명인의 술독은 오늘도 조용히 숨을 쉬며 전통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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