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원전 8기, 한국에 기회인가 독인가
미국 원전 8기 건설 사업에 대미 투자 기금의 60%가 투입되는 가운데, 기존 방식과 다른 AP1000 모듈형 공법의 리스크와 '초도호기 저주'에 따른 비용 초과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원자력 발전소 8기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대미 투자 협력 기금 2000억 달러 중 약 60%에 달하는 1200억 달러가 이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구조다. 하지만 이번 사업은 한국이 기존에 수행해온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언더스탠딩 김상훈 기자가 전한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AP1000' 모델이다. 한국은 그동안 콘크리트 격납건물을 현장에서 직접 타설하는 재래식 공법을 주로 사용해왔다. 반면 AP1000은 공장에서 제작한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형 건설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김 기자는 이를 두고 "축구와 미식축구의 차이만큼이나 종목 자체가 다른 것"이라고 비유하며, 설계뿐만 아니라 짓는 방법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3.5년 완공' 약속 깨진 보글 원전의 교훈
AP1000 공법은 당초 혁신적인 효율성을 내세웠다. 구조형 모듈 122개, 파이프 모듈 154개, 기기 모듈 155개, 전기 관련 모듈 11개 등 총 342개의 모듈을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웨스팅하우스 측은 콘크리트 타설 후 상업 운전까지 단 3.5년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다. 재래식 공법으로 원전을 지을 때 보통 6~8년이 소요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경쟁력이었다. 특히 공기를 단축하면 막대한 금융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값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13년 착공한 미국의 보글(Vogtle) 3·4호기는 상업 운전까지 약 11년이 걸렸다. 4호기의 경우 2024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하는 등 예상보다 공기가 대폭 늘어났다. 김 기자는 이 현상을 '초도호기 저주'라고 명명했다. 아무리 완벽한 설계도라도 처음으로 대형 구조물을 지을 때는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모듈 간의 간격이 미세하게 맞지 않는 '공차' 문제나 설계 변경, 끊어진 공급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공사가 지연된 것이다.
모듈형 공법의 핵심 변수, '공차'와 공급망
모듈형 방식의 성패는 정밀도에 달려 있다. 거대한 원자로 격납건물에 증기 발생기 등 주요 기기가 담긴 모듈을 크레인으로 옮겨 실을 때, 각 부품이 오차 없이 딱 맞아야 한다. 전문 용어로 '공차'라고 불리는 이 수치가 맞지 않으면 모듈 전체를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보글 원전의 사례처럼 모듈 간의 결합이 원활하지 않으면 공사 기간과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또한, 미국이 한국에 시공을 맡기려는 배경에는 한국의 우수한 건설 역량과 더불어, 한국의 물량을 통해 미국의 끊어진 원전 공급망을 복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원전을 대거 건설했으나, 1970년대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유틸리티 기업들의 발주가 멈추며 공급망이 약화되었다. 미국이 한국 기업을 통해 미국 내 공급망을 활성화해주면, 향후 미국이 독자적인 원전 생태계를 구축했을 때 한국의 역할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점이 리스크로 지적된다.
대미 투자 리스크 관리와 협상 과제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수주를 넘어 대미 투자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대미 투자 협력 기금 2000억 달러 중 60%가 투입되는 만큼, 원전 건설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경우 대미 투자 프로젝트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연말까지 100억 달러 정도의 선지급금을 송금하는 방안이 협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웨스팅하우스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협상 과정에서 세액공제 확보, 공급망 품질 보증,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용 초과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김 기자는 이번 사업이 모듈형 공법 경험을 쌓고 서방 시장에 동반 진출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비용과 품질에 대한 책임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출처: 언더스탠딩 : 세상의 모든 지식 유튜브 「미국 원전 지어주다 한국 호구된다? (언더스탠딩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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