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 소스까지 추출한다"…AI 역설계 에이전트가 흔드는 SW·게임 업계
AI가 소프트웨어의 작동 원리를 역으로 분석해 코드를 생성하는 '역설계 에이전트(REA)'의 등장으로 어도비와 MS 등 주요 SW 기업들의 기능 복제판이 잇따라 출시되며 업계의 속도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보고 AI가 거꾸로 설계 구조를 알아내 따라 만드는 '역설계 에이전트(REA, Reverse Engineering Agent)'가 개발자들 사이에서 화제다. 기존에는 사람이 일일이 도구를 사용해 분석해야 했던 과정을 AI 에이전트가 대신 수행하면서, 경쟁사의 기능을 빠르게 복제해내는 '속도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티타임즈TV가 전한 이 대담에는 REA의 개념부터 이것이 소프트웨어(SW)와 게임 업계에 가져올 파괴적인 변화까지 담겼다. 심재석 바이라인네트워크 대표와 최용식 엣지드 대표는 REA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기업들의 생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치찌개 맛집 레시피 알아내듯"…바이브 코딩과 결합된 REA의 위력
리버스 엔지니어링(역설계)이란 완성된 제품을 분석해 그 제품을 만든 원천 소스 코드나 메커니즘을 역으로 도출해내는 과정을 말한다. 기존에도 기업들이 경쟁사 제품을 분석할 때 사용하던 기법이지만, AI 에이전트가 결합되면서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심재석 대표는 REA와 최근 유행하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의 차이를 음식에 비유해 설명했다. 바이브 코딩이 "AI에게 김치찌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이라면, REA는 "특정 맛집의 김치찌개를 똑같이 만들고 싶으니, 그 집의 레시피와 비법 소스를 추론해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REA가 맛집의 비법(메커니즘)을 찾아내면, 바이브 코딩이 그 레시피를 바탕으로 실제 요리(코딩)를 완성하는 구조다. 심 대표는 "REA로 비법 소스를 연구해 육수를 만든 다음, 바이브 코딩으로 그 레시피를 기반으로 김치찌개를 끓이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최용식 대표는 "AI 에이전트가 직접 도구들을 조율하며 소프트웨어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스 코드를 작성한다"며 "기존에는 사람이 일일이 툴을 이용해 분석해야 했지만,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직접 툴을 사용해 소스 코드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도출된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소스 코드를 새로 쓰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사람이 할 일이 굉장히 줄어들면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매우 쉬워졌다"고 진단했다.
어도비·MS 기능 복제한 '크래프트' 시리즈…게임 업계도 '복제본' 확산
REA의 파급력은 이미 실질적인 제품 출시로 나타나고 있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REA 관련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키토브(KitoB)'의 스타(Star) 수가 29만 개를 돌파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개발자들은 단순히 코드를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실제 액션까지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개발자들의 주요 동기부여인 '특정 제품에 대한 몰입'과 '추억의 향수'가 결합되며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어도비(Adobe)의 제품군을 모방한 '크래프트' 시리즈가 꼽힌다. 스퀘어 출신 개발자인 브래던 토머스는 어도비 제품군을 역설계해 포토샵 대응 제품인 '포토크래프트', 일러스트레이터 대응인 '벡터크래프트', 프리미엄용인 '필름크래프트' 등을 선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오피스 제품군을 모방한 '워드크래프트(WordCraft)', 엑셀 대응인 '그리드크래프트(GridCraft)', 파워포인트 대응인 '덱크래프트(DeckCraft)' 역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단기간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처럼 불과 1~2주 만에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에 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최근에는 대규모 언어모델(LLM) 중 하나인 커플렉시티(Perplexity)가 자사 AI 에이전트 명령으로 '리졸브 엔지니어(Resolve Engineer)'를 탑재하는 등 기술적 진보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포토피아(Photopea)나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인 오데시티(Audacity)를 복제하는 과정이 영상으로 공유되기도 한다. 심 대표는 "오픈 소스보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더 세고 효과적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게임 업계의 변화도 거세다. 과거에는 서버 지원이 끊긴 오래된 게임을 복원하는 '문화재 복원' 성격의 작업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최신 인기 게임들도 타깃이 되고 있다. Xbox 전용 게임인 '페이블 2'를 PC용으로 리버스 엔지니어링하거나, '콜 오브 듀티'의 복제판으로 의심되는 '클라우드 오브 듀티(Cloud of Duty)' 영상이 올라왔다가 제작사의 항의로 내려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유명 게임 '폴아웃'의 브라우저 버전 역시 제작사의 요청으로 내려졌다.
"기능 경쟁은 끝났다"…낮아진 진입 장벽과 기업들의 속도전
REA의 등장은 소프트웨어 업계의 경쟁 문법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보인다. 심재석 대표는 "이제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기능 자체로 경쟁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경쟁이 훨씬 치열해진다는 의미이며, 생존이 과거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업 간의 경쟁이 새로운 기능을 설계하는 것보다 경쟁사의 기능을 얼마나 빠르게 따라 만드느냐는 '조직의 속도 경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수준에서 REA가 만든 제품은 원본의 50% 정도의 기능만 구현하는 '흉내 내기'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다. 브래던 토머스 역시 본인의 제품이 50점짜리 수준이라며 호환성 등을 공지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비용'이다. 원본이 1만 원에 제공하는 100점짜리 기능을, REA를 활용한 업체가 1천 원에 50점짜리 기능으로 제공한다면 이용자들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특히 라이선스 인증을 위해 서버와 교신하는 등의 클라우드 연동이 없는 '설치형 소프트웨어'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보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적용하기가 훨씬 용이해 그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최용식 대표는 "지금은 아마추어들이 남는 시간에 하는 수준이지만, 만약 규모 있는 기업이나 천재적인 개발자가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면 원본을 뛰어넘는 제품이 나올 수도 있다"며 REA가 가진 잠재적 위험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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