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저평가 구간 진입했지만… "바닥 확인하려면 3가지 조건 필수"
코스피가 저평가 구간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이익 전망과 금리 추이, 수급 상황이 확인되지 않아 추가 하락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코스피 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하며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주가 하락이 저가 매수의 기회인지, 아니면 채권으로 자산을 옮겨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은행 박형중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코스피 조정의 원인을 기업의 실적 문제가 아닌, 미래 이익에 대한 가치 산정 기준의 변화로 분석했다.
반도체 비중 높은 한국, 대만보다 하락 폭 컸던 이유는?
이달 들어 코스피는 약 17~18%가량 급락했다. 반면 한국과 산업 구조가 유사한 대만 증시는 같은 기간 2% 내외의 하락에 그치며 한국과 뚜렷한 수익률 차이를 보였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세 가지 핵심 요인으로 환율, 산업 구조, 금리를 꼽았다.
먼저 환율의 영향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1,300원대 초반까지 빠르게 하락하며 원화 강세가 진행된 반면, 대만 달러화는 달러 대비 소폭 약세를 기록했다. 원화 강세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원화 환산 매출과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대만은 달러 대비 약세 덕분에 수출 이익 측면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산업 구조의 차이도 결정적이었다. 대만의 대표 기업인 TSMC는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반면,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높다. 메모리 반도체는 업황에 따른 이익 변동성이 매우 크다. 수요와 가격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기 시작하면 주가가 메모리 업황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락 폭을 키우는 특성이 있다.
금리 역시 주가 하락의 주요 원인이다. 미 10년물 국채 금리가 5%를 상회하는 등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기업의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이 높아졌다. 이는 주식의 적정 가치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 특히 상반기 주가 상승폭이 컸던 한국 시장은 투자자들의 주식 보유 비중이 높아 매도세가 한꺼번에 나타나며 조정이 더 크게 나타났다.
코스피 P/E 4배 수준의 저평가, 지금 사도 될까?
현재 코스피의 선행 12개월 주가수익비율(P/E)은 약 4배 수준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수치로, 지표상으로는 분명 저평가 구간이며 저가 매수의 기회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박 이코노미스트는 단순히 낮은 P/E만 보고 성급하게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경우 이익 변동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업황이 가장 좋을 때 오히려 P/E가 낮게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이코노미스트는 코스피 진입을 고려하는 투자자들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전망이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상향 조정되는지 여부다. 만약 이익 전망이 하향된다면 저평가된 P/E 수치는 의미가 없어지며 조정이 길어질 수 있다. 둘째는 금리 상승 압력이 진정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금리 상승세가 멈추지 않는다면 주가의 변동성은 계속될 수 있다. 마지막은 수급 측면에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줄어드는지, 그리고 악재가 발생했을 때 주가가 더 이상 밀리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나타나는지를 살펴야 한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현재로서는 이 세 가지 조건이 충분히 확인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주가 수준 자체는 매력적일 수 있으나, 시장의 바닥을 확인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며 추가 하락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AI 성장성은 유효하지만, 채권 투자는 '시기'가 관건
향후 주식 시장의 흐름에 대해 박 이코노미스트는 단기적인 상승 추세 회복은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인 약세장으로의 진입도 아니라고 진단했다. 기업들이 실제로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심과 고금리로 인해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장기적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낮으며, 이에 따른 반도체 수요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와 같이 높은 수익률을 당연하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채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채권 투자에 있어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금리가 높아진 만큼 채권의 이자 수익 자체는 매력적이지만, 금리가 추가로 상승할 경우 채권 가격이 하락해 기대했던 이익을 얻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듀레이션(채권 만기)을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은 물가 상승 압력이 완화되고 시장 금리 상승세가 진정되는 시점에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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